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라즘 왕조 (문단 편집) == 성격과 의의 == 위에서 정리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호라즘 왕조는 오랜 정치적 혼란 때문에 몰락해 가고 있던 서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지역을 일시적으로 제압해 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 그러나 칭기즈 칸이 호라즘을 침공한 근본적 원인이 과연 무함마드 2세의 모욕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서아시아 지역의 쇠퇴가 몽골이 원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당시 서아시아 지역의 혼란했던 역사적 배경을 감안할 때, 호라즘의 역량으로는 칭기즈 칸의 힘에 대항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또한 호라즘 제국의 정치적 혼란 때문에 우수한 튀르크 기병과 귀족들이 문화적으로 유사한 몽골 군대에 차례 차례 가담하였다. 이재운 작가의 소설 '칭기즈 칸'처럼 호라즘이 금나라보다도 강력한 나라였다는 주장이나 서술도 있지만, 실제 전쟁 양상을 봐도 그렇고,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영토만 놓고 본다면 거의 맞먹었지만, 금나라가 확보한 화북+만주 지방과 달리 호라즘이 차지한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은 전통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인 데다, 당시의 호라즘은 앞서 언급한 대로 통치체계도 탄탄하지 못해서 몽골에 맞설 역량이 훨씬 떨어졌다. 호라즘 왕조가 역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오히려 동아시아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몽골군 주력이 호라즘 원정에 동원되어 금나라 멸망이 늦춰졌다는 점이다. 당시 금나라는 몽골에 의해 화북과 만주 일대를 모조리 빼앗겨서 카이펑에 천도를 한지 얼마 안 되어서 만약 호라즘 제국과의 전쟁이 없었다면 몽골에 의해 더 빨리 멸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사가 짧고 사료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학자들은 호라즘 제국의 국가 체제나 사회 문화 등이 다른 중세 튀르크-페르시아 제국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본다. '''튀르크-페르시아식 체제'''란 [[가즈니 왕조]]와 [[셀주크 제국]]을 통해 확립되어 [[사파비 왕조]],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 시대까지 이어진 체제로, '''유목민 부족들의 연합이나 [[굴람]]([[맘루크]]) 출신 군벌 등 튀르크계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권이 수립되지만 국가 정부 운영은 페르시아인들이 맡는 체제이다.''' 페르시아인 관료 겸 학자들이 국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학술, 예술 등 문화적인 부분은 거의 페르시아적인 색채를 띠었다. 이 체제가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호라즘 제국은 과거 패권국가인 셀주크 제국의 페르시아식 체제를 그대로 답습했으며, 호라즘이 멸망하고 들어선 몽골의 [[일 칸국]]도 마찬가지였다. 호라즘 왕조가 망한 이후에도 호라즘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훗날 여기서 우즈베크족 출신의 [[샤이바니 칸]]이 [[히바 칸국]]을 세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